보스턴 Harvard Medical School -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연수기
서지아 (고려의대)
저는 2012년 9월부터 2014년 8월까지 만 2년간 보스턴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실은 겨우2주 전에 당뇨병학회지에 해외연수기 원고를 제출한 지라 ‘또다시 연수후기를??’ 하고 약간 난감했었는데 이미 많은 학회 선배님들께서도 이렇게 두 번의 후기를 쓰셨었다는 말을 듣고 조금 다른 에피소드 중심으로 써 보기로 하였습니다.
저의 경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비교적 급하게 연수지를 결정해야 했고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남편의 연수 근무지와 같은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미국에서도 큰 대도시로만 국한해서 연수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또한 2년의 연수를 계획했기에 꼭 한 번 실험연구를 해 보고 싶었는데 그 동안 워낙 경험이 없던 지라 적당한 곳을 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장 9월부터 연구년인데 4월까지도 연수지 결정이 되지 않고 있던 중, 예전에 보스턴에서 개최되었던 비만학회 때 한 번 뵌 적이 있던 보스턴 하버드의대의 김영범 교수님께 혹시 적당한 곳을 추천해 주실 수 있는가 하고 부탁메일을 드렸는데, 마침 김영범 교수님께서 본인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셔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약 3개월 만에 수속이 모두 완료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영어도 능숙하지 않고 실험에 일천했던 제가 기초부터 자세히 여쭤보면서 비교적 빠르게 배우고 편하게 실험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인 교수님 실험실이었던 장점 덕이 컸던 것 같습니다.
연수 이전에 보스턴에는 학회 참석 차 두 번 가 보았었는데 당시 도시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학회는 항상 좋은 계절에만 갔었으므로^^) 이곳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동경이 있었고, 하버드, MIT 등 유수의 대학들을 비롯하여 도시 전체가 학교 분위기라 아이들 교육에도 좋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떨림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보스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것이 저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이라 하면 뭔가 한국보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관대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특히 한국에서보다 운전하기 훨씬 편하다고 들었는데, 보스턴은 달랐습니다. 일단 도로에서 꾸물거리는 앞 차가 보이면 ‘빵빵’ 클랙션을 울려대며 중앙선을 넘어 홱 추월해서 가는 성미 급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제 눈앞에서 자전거와 승용차가 교차로에서 충돌해 사람이 크게 다치고 911이 출동한 모습을 목격하였고, 그 다음주 병원으로 출근하는 길엔 앞차를 박고 그냥 뺑소니쳐버리는 차까지 보고나니, 안 그래도 교통신호체계가 낯선 데다 복잡하게 얽혀있어 가끔 진행방향도 헷갈리는 오래된 보스턴 시내길 운전이 정말 부담스러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신호를 기다리던 저희 차를 미쳐 보지 못한 트레일러 (알고 보니 무보험차량) 때문에 큰 사고를 당했는데 질 나쁜 운전사와 권위적인 경찰 때문에 억울하게 잘못을 뒤집어 쓰기까지 했습니다. 침대, 식탁 등 가구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는데 며칠이면 온다던 배송이 3주 동안 오지 않았고, 한 나절 기다려 신청한 운전면허증은 RMV(차량등록소) 직원의 실수로 2개월간 집에 도착하지 않아 결국 RMV에 3번 방문해 직접 받아 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첫 수 개월 동안 나쁜 경험들로 인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지던 중, 크리스마스방학이 되어 왕복 1000마일 거리의 워싱턴 DC로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잘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운전시작 약 4시간 만에 갑자기 심한 눈폭풍(snowstorm)을 만났습니다. 정말이지 겨우 한 시간 만에 온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속에 고속도로가 완전히 눈으로 덮여 모든 차들이 여기저기 서버리거나 미끄러져 오도가도 못하는 마비상황이 되었습니다. 마치 스키를 타는 것처럼 겨우겨우 아무 램프로나 빠져 나와 고속도로 바로 옆의 모텔로 들어갔는데 이제 차는 눈 속에 아예 박혀 꼼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빈 방이 없다는 겁니다. 꼼짝없이 눈 속에 묻힌 차 안에서 밤새 아이들과 노숙을 해야 되었기에 망연자실하고 있던 찰나, 한 백인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마침 우리처럼 보스턴으로 가다가 발이 묶인 젊은 처녀가 저희의 딱한 사정을 보더니 자기 방에 함께 묵자고 얘기해 주었던 겁니다. 정말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더구나 더블 침대 두 개 방이었는데 자기는 괜찮으니 바닥에서 자겠다고 까지…. 결국 그 처녀는 저희 아들과 한 침대에, 남편과 저와 딸아이는 다른 침대에 옹기종기 붙어서 한 밤을 감사하게 보냈습니다.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동양인 가족에게 선뜻 방을 함께 쓰자고 하기가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녀의 선한 호의가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 때부터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 전과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매우 개인주의적인 것 같으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그 일이 보스턴 정착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고 이후부터 미국 생활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해 연수 생활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연수기간에 제가 했던 연구들은 저희 실험실에만 있는 Clusterinflox/flox 생쥐와 Cre-recombinase (albumin-cre, myogenin-cre 등)를 가진 생쥐를 교배해서 조직 특이적으로 Clusterin을 결손시킨 생쥐를 얻은 후 그 동물에서 관찰되는 체중, 혈당, 섭식의 변화 및 인슐린 저항성 등 표현형에 관한 실험과, Clusterinflox/flox 생쥐에 AAV-Cre를 시상하부에 stereotaxic injection하여 Clusterin 유전자를 시상하부에서 결손시켰을 때 식욕, 체중 및 혈당조절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직접 쥐들을 교배시키고 새끼를 낳으면 genotyping을 하는 것부터 표현형을 보고 실험하는 모든 과정이 쥐를 갖고 하는 실험들이었는데 한번 실험쥐를 동물실 밖으로 들고 나오면 다시는 그 곳으로 돌려보낼 수 없고 죽여야만 하는 규정 때문에 거의 매일 동물실에 갔습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애완동물도 무서워서 만지기 싫어하던 저인지라 처음엔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계속 하다 보니 익숙해 졌습니다. 하버드 대학 전체가 그렇듯이 제가 있던 BIDMC 내분비내과에도 한국인 연구자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저처럼 연수오신 분들뿐만 아니라 post-doc들, staff들 등 여러 포지션으로 활약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꿈을 품고 온 연구자들이 모두가 열심으로 연구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하버드로 연수를 가는 가장 큰 장점은 BIDMC가 있는 Longwood 지역의 병원들뿐만 아니라 셔틀버스로 갈 수 있는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까지 워낙 많은 기관에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연구진들이 포진해 있다 보니 뭔가 새로운 종류의 실험을 해 보고 싶을 때 함께 collaboration하거나 배워오기가 참 좋다는 것과, 수시로 세계적 수준의 크고 작은 컨퍼런스들이 주위에서 열리기에 시간과 노력만 투자할 수 있으면 가장 최신의 지식을 습득하기에 최선의 조건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우리 실험실에서 주로 해 오지 않았던 stereotaxic virus injection이나 뇌조직 면역형광염색을 배우는 데 다른 실험실의 외국인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지도 교수님께서 그 동안 쌓아 놓으셨던 돈독한 인맥 관계의 덕이 컸습니다.
BIDMC의 또 한가지 장점은 BIDMC가 ‘Boston Red Sox’ 팀의 지정 병원이어서 BIDMC 직원은Fenway 구장에서 열리는 Red Sox의 경기를 1회말이 지나면 한 장에 5달러만 내고 남은 입장권을 구입해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다 귀국하기 한 달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BIDMC 주차장에 무료주차를 하고, 근처의 Fenway 구장에 걸어가서 Boston Red Sox vs Chicago White Sox의 경기를 관람하였는데 운이 좋게도 Red Sox가 9회말 5-4로 역전승하는 경기를 관람하게 되어 매우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만일 야구를 좋아했었다면 메이저 리그 경기를 값싸게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귀국한지 4개월째이지만, 아직 보스턴의 고풍스러운 거리와 찰스 강, 아름다운 단풍이 눈에 선합니다. 보스턴에서 즐겁고 유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주신 김영범교수님과 실험실 동료들,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멋진 도시 보스턴에서 연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선후배 선생님들 모두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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